제6회 <마음으로 보는 세상> 시각장애인부문  대상








꿈







이 현 경





 나는 지방 4년제 국립대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는 학생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그다지 잘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못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남들과 비교해서 결정적인 핸디캡이 하나 있다. 
 눈.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별로 폼 안 나는 이름의 병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그 몇 미터 안 되는 길은 하늘이 잘 보였다. 아니, 별이 잘 보였다. 별이 잘 보인다고 들었다.
 어느 날인가, 사감 선생님께서 기숙사 문을 늦게 따주시는 바람에 기숙사생들이 전부 기숙사 문 앞에 서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우와, 별 예쁘다!”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모두들 감탄했다. 마치 쏟아질 것 같다고. 사진을 보는 것 같다고. 모두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사감선생님이 오셨고, 시선은 일제히 자물쇠로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한참을 그러고 올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별을 보면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남들이 꿈을 이야기하는 그 공간을 보고 나는 어두움 외에는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시골에 살면서도, 난 사람들이 보았다는 그 하늘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은 본 적이 없다.
 나는 사람이 가장 비참할 때가 꿈을 잃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꿈이 있다면 어떤 상황도 감내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꿈이든. 친구들에게는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그 눈들은 그렇게 쉽게 하늘의 꿈에서 땅의 꿈으로 떨어질 수 있었나보다. 굳이 하늘에 떠 있는 꿈을 찾지 않아도, 그 아이들은 저 기숙사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공부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현실의 꿈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잔인한 병이다. RP.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시력이 점점 약해지다가, 종래에는 완전 실명에 이르게 된다. 나아질 수는 없다. 죽을 때까지 실명에 이르지 않았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명이 짧은 탓이리라. 시력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정안인으로 살던 삶과 맹인으로 살아야 하는 삶. 나는 그 간극을 감히 계량할 수 없고, 나는 그 엄청난 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는 그래서 계속 별을 찾고 있었다. RP환자는 별을 보지 못한다. 야맹증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고 모든 별이 다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두 개, 잘 찾아보면 세 개쯤은 보이는 별이 있긴 있다. 그 좁은 시야로 하늘을 걸레질하듯 훑어가며 한참을 별을 찾고 있었다. 없다.
 없었다. 없었고, 기숙사의 일정은 내가 별을 찾지 못한 것 따위와는 관계없이 돌아갔다. 나는 또 목적 없이 그저 책을 보는 시늉을 하고 있었고, 그저 나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시늉을 내고 있었다.
 시늉이 더 힘들 때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동안 나는 시늉을 하며 살았다. 그리고 제법 선생님들 마음에 들게 시늉을 냈나 보다. 그리고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시늉뿐인 내가 왜 굳이 존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 난 대학에 왔다.
 대학은 붕 떠 있었다. 학생회는 소위 ‘노는 사람’들의 집합소였고, 캠퍼스는 학문에의 열기보다 스펙에의 갈망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안에서는 최소한 시늉은 하지 않아도 되어서, ‘개인이 원자화되고 타인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덕분에’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자유는 외로움이었다. 기숙사의 콘크리트 벽은 차디찼고, 모래알갱이 같은 사람들 지나다니는 중문 한가운데서 낯선 곳에 발을 디딘 방랑객이 된 듯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또, 굳이 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그러다가 어떤 한 사람을 알게 됐다. 학교 내 장애지원센터에 갔을 때 처음 말을 붙여준 선배였다.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고, 착하고, 악기도 이것저것 잘 다루고. 뭐 장점을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는 사람이다.
 저녁때는 직원들도 다 퇴근하고 선배랑 둘만 센터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날은 아마 상담실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 선배의 옛날 얘기를 조금이나마 듣게 됐다. 왕따 당했던 이야기며…….
 그 선배가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새벽 두세 시까지 공부하고, 예닐곱 시면 일어나고. 이것저것 일도 많이 하면서 자기 공부 게을리 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인관계에 소홀하지 않고. 그걸 다 해내기 위해 선배는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감히 외로워할 수가 없게 됐다. 그 선배가 한 만큼은 못해도, 흉내도 내보지 않고 외로워할 수가 없었다. 꿈이 없다면 나는 꿈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장애지원센터에서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학사경고를 벌써 두 번 맞아서 제적위기이면서도 센터 일은 나서서 하는 지체장애 선배. 글씨 쓰는 것,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면서 늘 웃는 얼굴인 뇌병변장애 선배,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안면근육과 손근육 밖에 없으면서도 정말 두뇌가 비상한 역시 뇌병변장애인 선배. 그리고 그 외 여러 장애지원센터 식구들. 이 사람들이 다들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무거운 삶을 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럼에도 밝고, 그래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나는 아직도 꿈이 없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것을 느낀다. 언젠가 시력을 잃을 수밖에 없대도, 일단 지금은 최선을 다해 시력을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시력이 없어도 또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나는 요즘 아주 즐겁게 내 꿈을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해 보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내 꿈은, 진짜 내 꿈을 찾는 것이다.









제6회 <마음으로 보는 세상> 비시각장애인부문  대상




우리 모두는 마음의 장애인

김 명 자

  전 요즘 눈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올해로  47살인 나 고1된 아들과 고3이 된 아들, 그리고 중1 딸을 둔 엄마이기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하는데 요즘 들어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아집니다.
 경찰이었던 남편이 조그만 실수로 그만, 경찰직에서 물려 난 뒤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로 괴로움을 대신하더니 결국 음주사고를 내어 다리까지 다치게 된 뒤부터 우리 집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옛날에는 수영장이나 헬스장등을 다니며 취미활동을 하거나 저녁시간에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여느 주부들과 다르지 않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내가, 요즘은 아침 일찍부터 직장생활 하는 시누이의 아이들을 맡아서 돌보며 여가시간에는 매일 옷에 보석을 다는 부업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친 다리 때문에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남편이 새로 구한, 경비일로는 우리아이들 학비며 학원비가 턱도 없이 모자라기 때문이죠. 매일 이렇게 우리아이들 세 명과 시누이의 아이 둘, 틈틈이 하는 부업으로 씨름하며 정신없이 살아온 게 벌써 6년째, 처음에는 아이들과 어찌하던 살아야한다는 마음으로 힘든 걸 느낄 틈도 없이 살아왔는데 이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내 생활이 너무너무 힘들게 느껴지는군요.
  올해 고3인 아들이 있기에 더 허리를 졸라매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 생활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지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곤 하네요. 심지어 어떨 때는 매스컴에서 가출한 주부이야기나 일가족 동반 자살 같은 기사를 볼 때면 그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한답니다.
 어제는 고1인 둘째아들이 중학교 졸업 선물로 요즘 유행하는 모 제품 운동화가 받고 싶은데, 엄마 안 되겠지? 하는 것이었어요. 차라리 사달라고 졸랐으면 내 마음이 덜 아팠을 텐데 말입니다. 난 아무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 녀석이 “아냐 엄마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 이었습니다. 난 너무 속이 상해서 펑펑 울고 싶었지만, 언젠가 큰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항상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 쉬는 엄마 땜에 공부가 안된다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나서, 치솟는 설움을 억지로 삼키며 눈물을 참느라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에는 친구라도 만나서 하소연이라도 하면 좀 나아지기겠지 하는 맘에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친구들이 모두들 어느 정도 자리들을 잡은 터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 했다거나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기들 이야기 속에 끼지 못하는 내가 불편했던지 연락들이 뜸해지더니 하나 둘 떠나가 버리더군요. 
 언제부턴가 이 세상이, 눈에 보여 지는 것으로 많은 것들이 평가 되어지는 세상이 되어 힘들게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힘을 더 빠지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브랜드 옷과, 신발과, 가방이 학생들 생활 까지 파고들어 브랜드 제품이 아니면 무시당하게 되는 세상이 참 원망스럽기도 하고요. 나또한 남편의 직장이 형편없어지고 집에서 시누이 아이 돌보는 일과 부업일 을 하고부터는 친구들도 점차 떠나갔고 심지어 형제간 까지도 멀리지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모 구청 앞에서 바자회가 있어서 애들 옷 좀 살까 하고 갔었는데, 거기에서 좀 깨끗해 보이는 청바지가 눈에 뛰 길래 그 바지 얼마에요? 하고 물었더니 선글라스를 낀 아주머니께서 나를 한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귀찮다는 듯이 “이거 좀 비싸요”하며 가격조차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든 사람 들이 눈이 아닌 맘으로 이 세상을 보았다면 지금보다 많이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나도 남편이 경찰 이었을 때는, 지금 다른 사람들처럼 브랜드를 좋아했었으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일이 그렇게 되고 부터는 여지 것 제가 힘들 때마다 정말 남편을 많이 원망하며 살아왔구나 싶네요. 어떻게 보면 가장으로써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본인이 나보다 더 괴로웠을 텐데 말입니다. 이것도 다 마음으로 세상을 보지 못한 탓이겠죠? 마음으로 남편을 바라보려고 애써보니 그렇게 미웠던 남편이 이제는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네요.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까요. 아마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사람들처럼 명품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들은 모든 걸 머리와 마음으로 보고 판단하니 어찌 보면 그들이 내린 판단이 우리들보다 훨씬 현명한 판단일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드는군요. 오히려 모든 걸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려는 우리들 모두는 마음의 장애인이 아닐까요? 그리고 일반장애인들은 자신들이 불편할 뿐 타인에게는 상처를 주지 않는데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데 그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하는 우리 모두는 아주 심한 중증 장애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 주말에는 아들이랑 동묘 역 재활용 시장에 들려 아들이 갖고 싶어 하는 신발도 사고, 또 모두들 허술한 차림이지만 열심히 사는 그들을 보며 오랜만에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오면서 나와 우리아이들 부터라도 마음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