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부문 대상

존재하라    김*영

요리를 하려고 양배추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당장 내일부터 떡볶이나 샐러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 며칠간이나 녀석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기억력이 나쁘다기보다 (사실 그런 이유겠지만) 비닐로 포장된 모양이 꽤나 얌전하여 어디로 도망가지 않을 것 같아 방심했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양배추와 나는 냉장고문을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안에서 문을 박차고 나오든 밖에서 열어주든 어느 한쪽은 해야 할 것인데 우리 둘 사이에는 ‘문명’과 ‘자연’으로 표상되는 관계 만큼이나 먼 거리가 가로놓여 있었다. 어쨌든 구차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 저녁 녀석을 불현듯 떠올렸고 이내 물을 끓이며 녀석을 꺼내왔다. 그런데 녀석도 며칠간 빈둥거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몸 한 귀퉁이에 새로운 싹이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엉큼한 혁명’

그래. 아마 새로운 생명으로 그것을 간절히 염원한 것 같았다. 한편으로 웃음이 나면서 다른 한편으로 눈물이 날 듯한. 이상스런 열망에 사로잡혀 나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생명이 피어난 양배추를 든 채였다. 아니 어쩌면 그 시간만큼은 내가 녀석에게 무엇보다 강력한 끌림으로 붕들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10살에 시력을 모두 잃었다. 일 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세상은 온통 검은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애초에 내게 시력이 없어서 ‘색’을 알지 못했다면 검은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10살짜리 꼬마는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것인데 태어날 때부터 미숙아였고 의사의 말에 따르자면

“살아나는 것 자체가 기적일 뿐만 아니라 살아난다 해도 굉장히 낮은 지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예 의사소통이 불가할테니 그냥 이대로 포기하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마음에 준비를 해두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였으니 갑작스런 시력의 상실은 방향은 조금 달랐지만 어느정도 예고되어 있었다. 꽤 여러번의 수술을 거쳤으나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끈끈한 연을 맺어온 신촌세브란스. 너무나도 멀고 끔찍했던 병원의 모태인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소름돋는 아이러니다.

그런데 10여년이 넘도록 장애를 가지고 살면서 사실 많이 부끄러워했고 그렇기에 많이 숨어다녔다. 내가 실수할 수 있는 어떤 것. 이를테면 길을 못찾아 헤매거나 떨어진 물건을 집기 위해 허우적대거나 케인을 사용하여 가다가 바닥에 진열된 상품 또는 화분 등을 넘어뜨리고 사람들의 발을 의도치 않게 걸게 되는 것 등. ´실수´는 나의 일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억울했다.

"젊음이 너가 저지른 일에 대한 상이 아니듯 너의 늙음도 너에게 주어진 벌이 아니다." 같은 말에 담긴 생각 곧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툭하니 던져진 어려움인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래서 끊임없이 장애와 나를 분리시키면서 나를 드러냄과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숨기려 했다.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실수들에 위축될 때마다 나 자체를 부정하거나 혹은 장애만을 부정하곤 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장애를 가진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느 때는 받아들이다가 어느 때는 부정하게 되고 어느 때는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 머물렀다. 삶에서 겪는 도전이라는 게 끊임없이 밀려온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비슷한 시험인 것 같으면서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괴로울 따름이었다. 아마 성찰에는 완결이 없다고 하는 이유도 분명 이 같은 진실과 맞닿아 있을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부모님의 입장, 친구의 입장, 지인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훌륭해지기를 바랐고 실수하지 않기를 꿈꿨다. 이건 그들이 요구했을 수도 있고 요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장애를 알고 안타까운 시선을 던지던 사람들 앞에서 일견 그들의 맥락으로 충분히 나를 가엾게 여길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작새처럼 화려한 부분만을 펼쳐들었다. 연세대학교의 학생증이 그러했고, 이따금씩 받는 높은 성적이나 장학금이 그러했으며, 어릴 때부터 배워 둔 피아노와 기타 연주가 그러했다. 잠깐의 박수, 잠깐의 환호, 잠깐의 쾌락.... 나는 ‘순간’에 도취되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인스턴트로 전락해 갔다. 좋게 포장하자면 인정투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애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나의 것이었고 장애에 속한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써 나를 보호하는 나만의 방식이라고 합리화시켜 봤지만 분연히 일어선 부끄러움 즉 나 자신을 당당히 내어놓지 못하는 절망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우습게도 어렵게, 아주 어렵게 지탱하던 자존심과 합리화는 양배추 앞에서 모두 무너져 내렸다. 차디찬 냉장고에서 부활을 꿈꾸었던 녀석만큼 자신의 존재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싶었다. 부활은 조용해도 좋고 화려해도 좋았다. 혁명이 어떤 규모와 방식으로 등장하든 혹은 실패로 돌아갈지라도 그것은 별로 상관 없었다.

“존재하라.”

마치 녀석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간 “너니까 괜찮아.”라거나 “너로 충분해.”와 같은 말을 별로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물론 내가 거부했거나 인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정도 우리가 그 어떠한 종류의 위로나 존재 자체로서의 인정을 얻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나도 싹을 틔우고 싶어졌다. 본래 결핍된 상태에서 절망과 욕구가 동시에 솟아나지 않던가. 솔직히 말해서 양배추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한 귀퉁이에 싹을 매달고 시퍼렇게 쳐다보고 있는 바에야 피할 도리가 없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하여 커지고 높아지고 성공적이길 바라는 현실에서 이제는 변화를 기획해 보고 싶어졌다. 설령 이것이 아주 잠깐의 감정이거나 다른 형태의 시험에 직면하자마자 자빠져 누울 만한 부활이라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순간의 불타오름이 반복되다보면 언젠가 뜨거운 열기로 솟아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존재해야겠다. 나 자신에 대한 의무는 결국 나에게 주어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다른 길벗들 이를테면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난민, 이주노동자...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각기 다른 ´소수자성´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존재하라는 말을 던지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들의 편에 서서 변호하고 이야기하고 끊임없이 당당해지기를, 단순히 ´자신감´과 세상 앞에 나서는 것을 오로지 그들의 몫으로, 책임으로, 의무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양배추처럼 곁에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아니 엄밀히 따져볼 때, 녀석은 냉장고문을 열고 나온 것은 아니니 청출어람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에 대해 저자로서 그 내용이 어떻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존재할 수 있다. 어쩌면 이미 모든 수식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사소하지만 이로써 장애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작아졌고, 변호사의 꿈이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 오래 살아 본 것은 아니지만 삶은 조그마한 흔적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흔적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설명해 줄 것이 분명하다. 오늘처럼 우습고 일상적인 경험이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게는 특별히 기록하여 남길 만한 사건이다.

한참을 고민했다. 내게 깨달음을 준 양배추 선생님을 썰어서 먹는 것이 마땅한지 아니면 고히 보내드리는 것이 마땅한지 쉽게 판단할 수 없어 그 사이를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그러나 스승을 땅 속에서 무의미하게 썩어가도록 방치하는 것 역시 그리 좋은 ‘예’가 아닌 것 같아 도마 위에 살포시 올려 보았다.

메뉴는 떡볶이다. 불이 필요치 않은 샐러드보다 뜨겁고 화끈한 떡볶이가 ‘부활’이나 ‘혁명’과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여. 스스로 존재하라. 그리고 활짝 피어나 무수한 생명으로서 서로를 마주하자. 마치 양배추와 내가 만나 하나의 불씨가 된 것처럼.

마지막으로 존재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장애인 김진영입니다. 존재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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