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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20회 <마음으로 보는 세상> 글공모 대상
작성자 작성일 2025-10-17 첨부파일 없음
내용


그는 마음으로 보았다 (강용관)







박사과정 첫 수업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낯선 얼굴들 속에서 내 시선은 단번에 한 부부에게 향했다. 조용히 앞줄에 앉은 남성과 그 곁을 지키는 부인.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합주자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고, 자연스럽게 한 팀처럼 움직였다. 그저 친밀한 부부겠거니 했는데, 강의가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그 남성분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박사과정 수업, 그것도 ○○대학교 강의실에 시각장애인이 앉아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도 낯설었다. 감탄보다 먼저 다가온 건 당혹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분이 과연 어떻게 강의를 따라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곧, 내 짧은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서사의 서문이 되었다.



그분은 수업이 시작되면 항상 조용히 점자책을 펴셨다. 손끝은 빠르면서도 섬세하게 종이 위를 스쳤고, 마치 눈으로 읽듯 능숙하게 내용을 따라갔다. 교수님의 질문에도 주저함이 없었고, 답변은 정확하고 논리적이었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때로는 유머까지 섞였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능력이었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발언을 해도, 그는 “
○○ 선생님 말씀이죠?” 하며 자연스럽게 맞혔다. 나는 그의 집중력과 청각의 민감함에 놀랐고, 그 순간부터 ‘장애’라는 말이 그의 존재 앞에서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분의 영어 텝스 점수는 나보다도 높았다. 점자책으로 공부하면서도 외국어까지 완벽히 소화하는 그의 능력에,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내가 발표를 맡은 수업이었다. 긴장한 탓에 영어 단어 하나를 잘못 해석했고, 말문이 잠시 막혔다. 순간 강의실이 조용해졌고, 나는 뺨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때, 가장 먼저 내 실수를 바로잡아준 사람이 바로 그분이었다.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정확한 의미를 설명해주셨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그는 나를 민망하게 하지 않으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놀라운 건, 그분은 그 단어의 문맥과 의미를 점자책과 청각만으로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분이 가진 감각과 배려심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시각은 없지만, 그분은 누구보다 빠르게 사람의 감정을 읽었고,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채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보다’라는 것이 단지 눈으로 하는 행위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실감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나는 그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공부 방식이 궁금해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그는 우리나라의 점자책 현실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선진국에선 점자책을 기관에서 지원해줘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제도가 없어서, 일반 책을 사서 점자책으로 따로 의뢰해야 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꽤 많이 들어요.”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같은 교재 한 권을 얻기 위해, 누군가는 돈을 더 내고 몇 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단지 시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문의 시작선조차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분은 그런 제도의 빈틈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나처럼 불편함 없는 몸으로 공부해온 사람들에게조차 더 깊이 있는 시선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어느 날 수업 중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맹인학교에서는 대부분 안마를 배워요. 그게 현실적인 생계 수단이니까요.”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놀라웠다. “저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안마가 나쁜 건 아니지만, 저는 다른 길을 가고 싶었어요. 공부를 선택했죠.” 모두가 비슷한 삶을 준비하던 시절, 그는 혼자 꿈을 꿨고, 기꺼이 그 길을 향해 걸어갔다. 그 결과, 그는 지금 ○○맹인학교의 교장이 되어 많은 학생들의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그분이 부임한 뒤 학교가 많이 발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대통령상까지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부끄러웠다. 눈을 갖고도 보지 못했던 것, 걷고도 나아가지 못했던 나의 안일함이, 그분 앞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그날은 학기 말 회식 자리였다. 평소보다 편한 분위기 속에서 교수님과 동료들, 그리고 그분 내외도 함께했다. 내 맞은편에 앉은 그는 익숙한 듯 나의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이름을 불렀다. “
○○ 선생님, 군인이시죠? 계급이 어떻게 되시더라?” 내가 “소령입니다”라고 답하자,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반드시 장군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을 크게 가지세요.” 순간 당황스러웠다. 나는 장군이 될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은 단순한 덕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분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나의 가능성을 나보다 먼저 믿는 듯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그 말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내 가능성을 믿고 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 남겼다. 어쩌면 그분은,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았기에 타인의 가능성도 크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분은 신앙심이 깊은 분이셨다. 매일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 기도하신다고 했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걸 믿어요.” 그는 미소를 띤 채 담담히 말했다. 나는 성경 속 맹인이 예수님께 치유받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계획하신 길을 신뢰했다.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앙이라는 것이 단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믿고 나아가는 힘이라는 걸 느꼈다. 그는 단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분은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고,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신앙은 말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고 있었고, 나는 그 신앙의 단단함과 평안함을 곁에서 배웠다. 그의 눈은 닫혀 있었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 환히 열려 있었다.





그와 함께한 수업은 단지 지식을 쌓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편견과 무지, 익숙함을 깨뜨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진짜 배움이 무엇인지 배웠다. 점자책을 넘기던 손, 조용히 가르쳐주던 말, 밝은 웃음, 사람을 기억하는 따뜻한 인사,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빛으로 바꾸는 태도. 그분은 존재 자체로 배우게 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보는 것’은 꼭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로 세상을 보는 일은,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눈은 닫혀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분명하고 환하게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시선을 빌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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