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손 (김*찬)
남편은 내 무릎에 손을 맡기도 잠이 들었다. 손사락 관절이 욱신거린다면 좀 주물려 달라고맡긴 손이다. 수십년을 부부로 살면서 손을 이렇게 찬찬히 만져 본 적이 얼마나 될까! 손가락 마디마디 옹이 투성이다. 끼고 살던 반지가 불거진 간절때문에 빠지지 않아 몇 년째 그냥 끼고 산다.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손이란 촉각 외에도 간자기 기능을 다양하게 수행하는 데, 시각이 할 일의 대부분을 손이 대신할 수밖에 없다. 그런 손에 적신호가 켜졌음에도 남편은 손의 통증 따위는 그냥 일상적인 일로 치며, 별로 심각히 여기지 않는다. 게다가 남편은 잠에빠져서도 손가락을 불끈거리는 동작을 더러 했다. 오로지 손 하나로 가족의 생계를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증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잠자리에서 조차 현장의 동작을 재연할까 싶어 내 마음은 또 긁혔다. 남편의 손은 우리 식구의 생계를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증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잠자리에서 조차 현장의 동작을 재연할까 싶어 내 마음은 또 긁혔다. 남편의 손은 우리 식구의 생계를 떠맡은 유일한 도구이다 보니, 어스름이 내리면 남편은 도 저 낡은 연장을 추슬러 들고 일터로 나갈 것이다. 나가서 또 세파에 찌든 군상들의 몸을 짚어 몇 차례 다름질하고 나면 어느새 어제 같은 여명을 맞을 것이다. 새벽의 괭이잠을 깨워 귀가를 서두르게 하는 건 여명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줄줄이 손 내미는 것들이리라.
세상을 향해 길을 물었다. 다른 대답은 없었다. 오로지 손의 악력만으 요구하는 세상이 있었다. 남편은 말했다. ´안분지족´할 줄 알아야 생이 가벼워지고, 제 분수를 헤아려 주어진 처지에 만족할 줄 아는 인생이야 말로 승리하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남편이 미래로 그리고 사는 세상은 아주 단순하고 소박해서, 고대광실, 호의호식 따위는 숫제 꿈도 꾸지 않는다. 오로지 내 식솔들의 생계 하나만을 지켜내기 위해 가장의 본느으로온 몸을 얹어 누르고 도 누른다. 망가지는 손 따위는 단순한 부수적인 결과물로 받아들이며 제 앞에 놓인 세상을 한 혈 한 혈 짚어온 손이 저 못생긴 손이다.
아마도 남편의 굳은살은 손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비록 시각장애인일 망정 가장으로서, 사내로서 세상에 나가 좌충우돌하며 옹골차게 기개라도 펼쳐 볼 일이겠으나, 결코 세상사 모두가 팔자소관이려니 여기서 살아온 남편인들 어찌 장애라는 한계에 매인 운명이 야속지 않으랴. 온 가족의 생계를 손아귀 하나로 감당해온 무게는 차라리 외로움이 되어 세상의 무게를 홀로 짊어진 듯한 심정은 아닐까 두렵다.
요즘들어 나는 하늘의 도리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집에도 활짝 웃을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간에 붑로 살면서 겪는 애환이야 한둘일까만, 그중에서 태풍의 눈으로 다가오는 문제가 자식의 혼사 문제다. 그런데 남편은 어람 전부터 손의 악력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그에 따라 남편의 손은 더한 통증을 호소하지만, 아랑곳 않는다. 외려 은근히 신바람이 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뿐인 아들 녀석의 결혼 나라가 잡히고서 부터다. 그런 몸짓은 장애인 부모로서 큰 고비 하나를 무사히 넘겼다는 충만감의 표출일 것이다. 아들의 혼사가 성사되기까지 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건 아이들의 신접 살림잡에 대한 사돈 측과의 의견 차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빌라가 그다지 넓진 않아도 아들 내외와 우리 부부가 살기에는 좁은 대로 그냥저냥 살만하다. 그래서 당초 우리의 계획은 개네들가 한 집에서 살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사돈 측 부모에게 미리 알리는 게 당연한 도리라 여겨 통고를 하자,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다. 딴 살림을 내주지 않으면 결혼 자체를 취소하겠다는 최후 통첩까지 해 오는게 아닌가. 그때 남편은 뚝 잘라 이렇게 정리햤다. "어는 부모가 곱게 카운 제 딸 자식을 자애인 부모 밑에 주어 남다른 불편을 겪으며 살게 하고 싶겠느냐? 네 딸 내 딸 따질 것 없이 부모 마음은 다 같은 도리이니 우리가 좀 힘겨워도 양보하고 갑시다" 이러면서 외려 나를 설득하는 거였다. 하지만 위 경제 사정으로 보아 작은 전세아파트라도 한 채 얻어 주려면 모자라는 돈의 상당했으므로 부담은 컸다. 그럼에도 남편은 결혼 일자를 6개월 두로 미루는 합의까지 끌어내더니 그날부터 휴일마저 반납하고,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일터로 나가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남편이 그렇게 쉬이 제 입장을 양보하고 물러서는 데는 평소에 고집스레 우겨온 주장 하나가 있다. ´나의 장애가 남에게 불편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남편의 그런 고집으로 인해 손실을 입는 경우도 없지 않으으나, 나중에 돌아보면 결국 다른 부분에서 몇 갑절로 보상되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렇게 모든 인간 관계를 모나지 않게 살아온 덕목이 우리 가정을 이때껏 무탈하게 지켜온 자양분이 아니었을까? 남편은 가끔 이런 말을 툭 던지곤 한다. "그래도 당산과 아들이 있어서 내가 힘이 나는 거야"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부끄러워진다. 남편이 호박넝쿨이라면 나는 호박이 아닐까. 호박넝쿨이 버팀목을 감고 오르며 흠수한 땅의 영양과 하늘의 정기를 앉은 자리에서 고스란히 내려 받아먹는 호박의 형국이 그대로 내 모습이 아닐까도 싶다. 그렇다 남편의 손은 생을 다부지게 움켜지고 꿈을 감아 올리며, 오늘도 충전하는 덩굴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