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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각장애인 의학박사, 가슴앓이 34년 그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12-30 첨부파일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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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도 시각장애 몰라 무거운 짐 덜고 장애인 건강권 책임



 



 



예방의학 전문의 박종혁(34·현재 국립암센터 암정책지원과) 박사는 3급 시각장애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dmentosa)을 앓았다. 주변시야를 상실하고도 중심시력만으로 사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언제 실명될지 모른다.



 



 



▲ 3급 시각장애인 박종혁씨(예방의학 전문의)



박 박사는 21살 때 충북의대를 진학했다. 분명 남들과 다른 눈을 치료해보자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희귀질환인 RP는 치료방법이 없었다. 좌절이 그를 엄습했지만, 남들을 위한 삶을 살자은 의지 속에 또 참고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28살에 서울대 보건대학원 석사(장애인을 주제로 우수 석사논문상), 31살에 서울의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진학했다. 결국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지난해 의학박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가족도 모르게 장애 등록, 31년간 나 홀로 忍



 



어릴 적부터 세상이 남들과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깜깜한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화장실조차 가기 겁났다고 한다. 집 안팎에서 책상 모서리에 찍히고 턱에 걸려 넘어져도 안 보인다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박 박사의 가족은 아직 그가 3급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 조차 모른다. 그저 남들보다 시력이 안좋겠거니이라 장애는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15살 무렵, 저녁 귀갓길에 1층 높이의 다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온 몸에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났다. 집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는 오다가 깡패에게 맞았다이 둘러댔다.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장애사실을 모르는 가족들이 눈앞에 아른거려 잘한 결정인지 모르겠다이 반문했다.



 



제가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한 없이 눈물만 흘릴 부모님 모습이 아른거렸어요. 때문에 어릴 적부터 스스로 하자는 결심을 했는데 지금까지 왔네요. 하지만 이젠 짐을 덜고 싶어요



 



결국 2003년 대학원에 진학하고 지도교수의 설득 끝에 장애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 전까지 장애인이면서도 장애 혜택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 가족, 동기, 직장동료들 조차 그가 이야기 하기 전까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해왔다고 한다.



 



제 삶의 31년은 나 홀로 가슴앓이 시간이었습니다. 시력이 남들보다 좋지 않다고 생각해오다가 학창시절 시험을 치를 때마다 왜 나는 남들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큰 장애를 앓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의대를 지원했어요. 병명이라도 알 수 있을까 해서요



 



하지만 검사결과 그는 RP 진단이 내려졌다. RP는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따라서 치료방법도 찾을 수 없다. 야간 또는 어두운 장소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야맹증이 초기증상으로 나타난다. 차츰 주변시야가 좁아지거나 반대로 중심시야부터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박 박사는 불행 중 다행으로 중심시력이 남아있어 보정안경을 착용하면 낮에는 제한적이지만 활동이 가능하다. 주변 시야가 상실돼 보고자 하는 물체의 단면이나 글자의 경우 한자씩만 볼 수 있지만 그는 글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겉모습은 평범…직장동료 인사안하는 사람인줄



 



최근 사법시험 61년사에서 시각장애인 최 영 씨가 국내 최초로 합격했다. 최 씨 또한 박 박사와 같은 3급 시각장애인이지만, 눈으로 글을 읽을 수 없다. 책을 읽어주는 센서리더기에 의존해 5전 6기 투혼으로 사법고시를 응시했다.



 



집중해서 글을 읽고 나면 두통이 밀려옵니다. 조명 강도가 뿌옇거나 흐릿해도 글 읽는데 방해가 되죠. 때문에 최 씨와 같은 센서리더기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논문을 쓰고 읽는 일을 하고 있는데 멈추면 생계 또한 멈춰야 하니깐요



 



박 박사는 글자가 단어로 읽히지 않고 한 자, 한 자 읽히다 보니 글 읽는 게 가장 불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글을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다. 3급 시각장애인이면서도 글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안경과 똑같은 모습의 특수보조안경만으로 책을 읽거나 이동이 가능해 주변 사람들은 그가 시각장애인임을 눈치 채지 못한다. 오히려 박씨를 인사성이 밝지 않은 사람으로 오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는 안 보인다는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며 전화기를 보더라도 숫자 1을 쳐다보면 그 이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결국 걸을 때는 사람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요즘 그는 시각장애인임을 먼저 알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새로운 그룹에서 일을 하게 되면 3급 시각장애인이라 사람들이 잘 안보입니다. 제가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가더라도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먼저 다가와서 인사해주시면 더욱 고맙습니다이 첫 인사가 되어 버렸다.



 



2년 전부터는 혼자가 아닌 평생 반려자와 함께



현재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평생 혼자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4년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에서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평생 반려자가 될 아내를 만났다.



 



아래 연차로 들어온 아내와는 365일 연구실에서 함께 해야 하는 전공의 시절이었기 때문에 시각장애 사실을 먼저 털어놨죠. 이후로도 옆에서 꼼꼼히 챙겨주는 아내에게 반했고 오랜 구애 끝에 연애를 할 수 있었어요



 



1년간 연애한 둘은 2006년 결혼에 골인했고,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다.



 



아내 덕분에 넘어지거나 부딪혀 생긴 상처가 날로 줄어들고 있다는 박 씨. RP의 경우 가족력 확률이 50%이기 때문에 출산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아무런 증상 없이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들을 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공을 바탕으로 장애인 건강권, 사회권 지킨다



시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박 박사는 자기분야에선 항상 최선을 다했다. 전공의 시절 의료QA, DRG제도개선, 건강보험심사효율성, 장애인 보건의료개선 등 분야 연구를 보조했다. 또한 다양한 학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단에서는 예방의학전문의로서 연구와 국가암관리정책 개발 및 적용을 위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보건의료분과 위원으로서 장애인 건강권을 위해 힘쓰고 있다.



 



 



사법고시를 패스한 최영 씨가 향후 장애인 인권에 힘쓴다면 저는 의사로서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에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따라서 전국 시각장애인을 위한 실명퇴치운동과 함께 장애인 관련 보건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선진국과 달리 장애인을 위한 치료방법 및 신약 개발 등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도 제대로 하기 힘든 업무를 불편한 몸으로 개척하려고 하니 솔직히 힘이 벅찬다이 설명했다.



 



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하루 빨리 마련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선이 아닌, 남들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시각을 지녀 항상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제 작은 바람입니다


 



 



 



 



메디파나뉴스 이혜경 기자 (ging@medipana.com) 의 다른기사 더 보기



블로그 : http://blog.medipana.com/blog/ging



기사작성시간 : 2008-12-31 오전 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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