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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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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
산정호수, 46
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
오게 된 상황도 함께 온 사람들도 전혀
다르고
,
무엇보다 산정호수 자체가 전혀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
추억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라 첫 나들이라는 게 훨씬 어울릴 듯하다
.
그 시절 서울의 젊은이들의 놀이터는
그리 다양하질 못했다
.
수원 딸기 소사 복숭아 세검정 자두 태능 배
,
아니면 정릉이나 수유리 계곡
,
좀 멀리 간다면 이 산정호수와 근교의 산들
.
이 정도로 다닌 난 당시로서는 꽤나 싸다닌 축에 속한다
.
반 세기 만에
웬 바람이냐?
한화리조트의 사회 서비스 사업의 일환으로 저시력인협회에 콘도 무료숙박
(
방
5
개
2
인
)
을 제공했다
.
방 하나를 차지한 집행부는 제 나이를 까먹은 노처녀
삼종 세트
, 40
대
50
대
60
대
.
우리의 행사명은 “호숫가의 자유”
,
하루일
망정 장애로 인한 긴장일랑은 호수 물에 푹 담가 두고 ‘맘대로 멋대로 지내시다 가시기’ 노처녀 삼총사라고 예외일 순 없을 터
,
옆 사람들이 뭘 하거나 말거나… 우리도 자유라서
.
입실 퇴실은 12
시
,
무계획의 계획대로 리조트의 식당이 마련한 메뉴 중에 앞저트로
커피부터 마신 후 냉면으로 시원하게 점심도 해결하고 마침내 입실했다
.
작은 가방을 내려 놓으니 더 할일도
없어 슬슬 노처녀 삼종 세트가 산책을 나갔다
.
포천시가 잘 꾸며 놓은 한 귀퉁이에 한화리조트가 들어섰는지
,
리조트가 되느라 일대를 잘 정비했는지… 아무러나 물 소리 좋고 나무 그늘 오솔길 좋으니 기온이 좀 높다리로
무에 대수랴
.
개발자 중에
궁예의 후손이라도?
곳곳에 궁예의 흔적을 조각으로 설명으로 펼쳐 놓았다
.
철원 여기저기에도 궁예의 서글픈 전설이 몽유병 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
하긴
,
태봉국 흥망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이 지역을 거치게 될 게다
.
아직
아간지 이젠 꼬맹인지 때에 처음으로 궁예의 이야기를 읽었다
.
커다란 삽화를 많이 그려 넣어 아이들의
흥미도 이해도 키워주는 그런 책이었다
.
나말 왕실의 그 복잡다단한 배경은 책에 없었는지 내 기억에 없는지
아무튼 없었다
.
궁궐 담장 밖으로 던져진
,
유모가 받을 때
한 눈이 찔려진 아기 왕자님이 가여워
,
너무도 가여워서 울며불며 읽었더랬다
.
그 얼마 뒤 마의태자를 읽을 땐 책상을 치며 발을 굴러 울어댔었고
.
진부한 대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여기고 있다.
정치학을 해선지
,
어려서
읽은 궁예와 마의태자가 억울해선지 왕건의 덕망에 –수완 말고
-
대해 냉담하다
.
김춘추 김유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
한반도의 반 토막짜리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27
명의
(
아마도
)
지방세력가 딸들에게 왕비 자리를 미끼로 던져 주며 야합
(
연합이나
제휴라고 써 주어야겠지만
),
그게 치사하게 여겨져서 아무리 해도 좋게 보아지지가 않는다
.
물론 그 수완과 능력엔 감탄하고 있다
.
종교적 이상향을 몽유한 궁예야
애당초 적수가 못되는 것 같다
.
이 호수 뒷산의
이름은 명성산(
울음소리산
)
이고
,
패망한 궁예를 슬퍼하는 새들인지 사람들인지가 하도 울어대서 그리 부르게 됐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
철원 어디쯤
,
옛 태봉과 깊은 연관이 있는 어느 마을의 이름에도
鳴
(
울명
)
자가 들어있다
.
쫓겨가는
궁예를 따르며 그의 백성들이 몇날며칠을 울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
백성이란 원래 그런 존재들이다
?
개 돼지라서
.
그렇다면 할말 없지만
,
악질 왕을 쫓아내 준 그의 수하 장수를 백성들이 쌍수환호로 맞는 대신 쫓겨가는 패주를 따르며 울었다
?
난 어쩐지 이 전설을 그냥 흘려버리기가 아깝다
.
역사는 과거
속에 녹아들고 지금은 2
천 하고도
16
년
,
잘 계획하여 조성한 일대를 느긋하게 즐길 줄 아는 소시민
.
새 소리
맑고 숲 향기 싱그럽고 잎새에 이는 바람 청량하다
.
심심치 말라고 적당히 이어지는 노리끼한 데크의 나무결
정다운데
,
계단 밑에서 편히 내려오시라 기다려 주는 나에게 젊덜 않아서 벙긋 건네 주는 미소가 푸근키도
하다
.
2016. 7. 23
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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