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한 눈에 서울이 죄
용굴암
수락산
(水落山), 이름 만으로는 대단한 폭포나 넓은 계류가 콸콸 쏟아질 것 같지만… 상계동(上溪洞)에 있는 산이니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게 틀릴 건 없겠지? 곧 70이 될 나이에 어린애처럼 ‘왜~?’는 이제 그만 따지고 ‘그런가 보다’로 고쳐 볼 생각이다. 학자를 퇴직한 지도 꽤 됐는데 원인 이유 따위를 꼬치꼬치 따지는 학자정신도 퇴역 시켜야 할 것 같아서.
상계동 주민도 아니면서 이 수락산엘 꽤나 많이 왔다
. 이름에 불이 둘씩이나(榮) 들어선지 물이 떨어지는 산이 당기는가 보다. 시립 노인요양원에서 저시력인들과 재롱을 떠느라, 전에 끼었던 그 산행모임이 별스레 수락산에서 시산제 올리기를 좋아해서. 그리고 오늘은 수락산을 좋아해서. 이러저러 하다 보니 용굴암엘 5년 만에 또 오르고 있다. 단 선택한 코스가 다르다. 전에는 늘 7호선 수락산역 1번 출구로 나와 산에 올랐다. 요양원 쪽으로 오르던가, 문인마을(천병삼 시인)을 지나쳐 올랐는데, 오늘은 당고개역에서 내려 시장을 돌아 오르는 거다. 그러니까 산의 동남사면으로 서북향으로 오르는 모양이다. 목적 또한 다른 것이, 전엔 산엘 오르면서 용굴암엘 들렀던 것이고 오늘은 용굴암엘 가자니 산을 올라야 하는 것이고. 누구는 산이 거기 있어 등산을 하고, 난 절이 거기 있어 산속으로 끼어드는 거랄까?
용굴암엘 가자면 학림사 앞을 지나야 하는데 방향이 틀어졌나 도솔암이 나온다
. 뭔 도솔이 이리 나즈막한 산등성 중턱에… 도솔천이야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겠지만 도솔암은 늘 산 꼭대기 근처에서 보았던 터라 재미있어 하며 옆쪽 골짜기로 길을 고쳐 잡았다.
이래서 또 용굴암엘 오는 게 아니라 산행을 하게 되는 건가
?
일행 없는 산행
, 너무 쳐지지 않으려 바쁘게 바쁘게 쫓아갈 일 없으니, 아침 8시가 9시로 넘어가는 여유만만의 산속은 신선 상쾌로 꽉 차있다. 한숨 돌리려 이따금씩 올려다 보는 하늘, 그 하늘을 적당히 가려 주는 잎새, 흐흥-, 이렇게 다르구만! 울울창창까진 아니지만 검다 싶게 짙푸른 잎새는 자금자금 하달까? 열흘 전 다녀온 태국의 나무들, 잎이 크고 색도 밝은 초록, 넉넉해 보였다고 해 볼까? 어쨌거나, 학림사를 찾아냈고, 그 주차장에서 용굴암 길을 물었더니, 친절들도 하시어라. 금방 불기(佛氣)를 쬐고 나와서? “이 계단을 내려가셔서 옆으로 주-욱 올라가세요.” 계단 내려가는 내가 불편해 보였던지 거사 하나가 따라오며 다시 설명을 잇는데, 살짝 언어장애가 있다. 과부 사정 알아 준 홀아비? 안키로 한 왜?가 다시 작동한다. 내려온 계단과 평행에서 15도 우향우 중인 올라갈 계단. 너른 공간도, 대단한 기술과 장비도, 막대한 자금도 필요할 것으론 보이지 않는 터. 뭣 훈련 시켜 지금? 핑계 없는 무덤 없댔으니 뭔가 사연이 있긴 한가 보다.
이정표를 찾아 보랬더니
, 용굴암은 없고 ‘조계종 직할사’란 팻말만 있단다. 규격 크기의 이정표만 상상했던가 바로 옆 용굴암 표지가 너무 커서 찾질 못한다. 눈 좋은 이들이 이래 주어야 눈 나쁜 사람 기가 좀 살지. “잘했군 잘했어~♪” 둘레길 수준의 절로 가는 길, 남도 3백리는 아니어도 외줄기이다. 한 손에 과일 상자 들고 한 손으론 나를 잡아 끌어도 다리가 꼬여 주저 앉진 않아도 되는 딱 적당한 길이다. 금류폭포 은류폭포, 이름만 예쁜 폭포와 갈래가 다르긴 해도 귀를 씻어 주는 맑은 물소리가 없다 서운타 여겼더니… 귀를 세워야 겨우 들리는, 갓난아기 옹알이 같은 졸졸거림이 잠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일요 법회 오는 십여 명의 불자들을 만나 같이 걸었으니 길을 잘못든 건 아닐 테고… 원, 이래서야 월천공덕(越川功德)을 지을 수 있나!
드디어 용굴암
, 좁디 좁은 공간에 오또막 세워진 작은 절, 좁다란 다리를 얼기설기 이어대어 3동 뿐인 당우들을 이리저리 이었다. 5년 전엔 난간 없는 계단이 저 혼자 발딱 서있더니 그새 난간을 갖추었고, 다리도 하나 더 생겨 뒤론가 가고 있다. 스님은 딱 두 분, 태국에서 돌아올 때 집까지 나를 태워 주신 이 절 젊은 스님, 그래서 오늘 내가 여길 왔다. 법회에 온 이 절 신도들께 대웅전은 양보하고(?) 본시 이 절 뿌리인 나한전 굴 안에 자리 잡았다. 매캐한 습기 냄새가 고약했지만 냉동방 속이란 듯 시원키도 하다. 임오군란 때 피신한 민비가 이 굴에 숨어 있다가 환궁한 후 내린 하사금으로 제대로 된 절을 이루었다고 들은 것 같다. 나를 도우라는 특명을(?) 받았노라며 간밤에 전화, 당고개역에서 10시 반에 만나자던 스님께서도 얼추 당고개역에 도착 하셨으리.
동굴 속에서 한 시간 하고도 반
, 얼어붙기 전에 탈출했다. 절에 앉아 쉴 마당이랄 데가 없으니 화장실에나… 10시 반에 당고개역을 떠난 스님의 도착, 반갑다고 화장실 앞에서 찰칵, 히히! 물론 배경이야 저 멀리 멋진 풍광이지만 참 재미있게 작은 절이다. 법회가 끝나기 전, 신도 한 분이 대중방으로 우릴 안내했다. 산비탈에 간신히(?) 서 있는 2층집, 요사채, 5년 전엔 못 본 것 같은데… 벼랑에 서있는 집, 앞을 가리는 게 없으니 그냥 망망이다 망망! 여의도 불꽃놀이가 한눈에 굽어 보인다나? 불어 드는 바람의 품질은 초특급! 여기 신도들 이 망망방 때문에 오는 것 아냐?(죄송합니다) 방 한 귀퉁이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자니 밥상이 들어오는데… 이건 잔칫상이다 잔칫상.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절에서 물품반입은 등짐이거나 끽해야 지게? 하긴, 대한민국의 최상품은 죄 봉정암에 있다니까. 붇다의 위력이십니다.
부른 배를 썰삼매로 다스리는데 주지 스님 입장
, 밥상에 이마 찧어가며 황망하게 예를 올렸다. 시력이 0.01이면 눈치가 9.99, 상자의 객을 챙기시는 주지 스님의 스승/어버이 마음이 읽혀졌다. 말씀이 적으신, 어딘가 투박하고 산골스런 스님의 내공이 전해져 왔다. 이 절 신도들이 이 망망방 때문이 아니라 주지 스님 때문에 모였다고 생각을 정정했다. 상자께선 은사 스님 배려지덕으로 하산하여 2차(커피) 3차(저녁)를 거하게 쏘셨다. ‘멋쟁이 산골 스님’ 두 번째로 써보는 말이다. 30여 년 전, 새벽을 달려 태백산 정암사에 도착, 예불 마치고 모신 주지 스님의 설법. “졸리운 사람에겐 자라는 말보다 더 좋은 법문은 없다” 초등학생 때의 보물 찾기랄까? 상자 스님께서도 훗날 누군가의 보물로 찾아지시길 빌어 본다.
2016. 7.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