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따라 봄 따러

북한산 4코스에서 떠나 3코스를 향해 길 따라 꽃 따라,

느릿느릿, 봄을 따서 마음에 담으며 걷는다. 햇빛에 민감한 저시력 편하라고 하늘도 흐리멍텅 보조를 맞춘다.

늘어져 내린 개나리 긴긴 터널에선 “~개나리 입에 따♪”

문 병아리 되어 “뿅뿅뿅 봄나들이” 삼매경.

이름도 어여쁜 솔샘길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이어지는

얕으막한 비탈 아래 자그마한 옹달샘이 나온다. “깊은 산

~속 옹달샘♪”한 곡이 없을 수가… 세수한 새하얀 토끼

로 다시 슬슬 솔향길, 참나무 등살에 밀려나고 있는 소

나무들이 죽죽 뻗어 키 작은 날 하늘 우러르게 만든다.

길은 외줄기이나 남도 3백리가 아니라 동북 흰구름길로 이어지고 있다. 벚꽃도 한창 흐드러졌고 진달래 군락지는 환상이어라! 이흥렬 선생님 진달래 찾아 보고, 김동진 선생님의 진달래 찾아보며, 내 마음도 피워서 그 가운데다 묻어둔다. 여기 저기에서 이따금씩 백목련도 끼어들고 자잘한 조팝나무도 비탈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양이 귀엽다. 눈 앞 가까이 멀리

로 온통 꽃대궐이니 하늘을 우러를 짬이 아예 없다. 흰

구름, 저도 목하 꽃구경 삼매 중, 갈길 잊고 오락가락

잘 떠 있겠지?

꽃 감상에 지칠(?) 때쯤 빨래골 지킴터에 마련된 간이

정자(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한여름엔 무척 시원할 듯하지만,  그늘이 깊으니

흘린 땀이 식으면서 이거야 원 추워서… 간식에 음료까

지 몽땅 다 부지런 부지런 먹어치우고 다시 흰구름길을

따라 걷는다. 짐은 등에 메는 것보다 배에 넣는 게

제일 가벼운 방법이니까. 3코스 중간 쯤에서 4층 짜리

전망대가 나온다. 4층이라는 게 재미있을 뿐 건조물 자

체는 운치나 풍류까지를 지니지는… 요구가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팔 끝에 달린 내 손이 안 보이는 저시력

인지라 보지 않아도 보이는 기술로(?) 북한산 일대를

조명해 본다. 오늘처럼 흐린 날에야 600만불의 사나이

가 아니고서야 나보다 더 본 게 뭐 얼마나 되겠어?

화계사와 신학대학의 좁다란 사잇길로 들어서서 풀내음

킁킁 거리며 50년 전으로 돌아간다. 예가 바로 “내 놀던 옛 동산, 오늘 와 다시 보니” 산천도 의구하지 않

고 인걸도 간 데 없다. 실명의 반 년과 회복의 10년을 예서 아파하고 기뻐했고, 오늘 그냥 덤덤한 상춘객으로 다시 와 "옛 시인의 허사”를 새김질 한다. 4.19탑까지 이어지는 솔밭길을 따라가다 적당 지점에서 오늘의

일정을 마감키로 한다. 봄도 실컷 따서 담았고 따라

갈 꽃도 팍팍 줄어들길래.

버스 길을 찾아 조금 움직이니 마을버스가 3~4분에 한 대 꼴로 들어오는 종점이다.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가시철망을 담장 위에 빙빙 둘러놓은 집, 신기해서 다가가 보니 그 유명한 가르멜 수녀원이다. 굳게 닫힌 대문 안을 넘겨다 보니 안쪽 저 켠에 또 다른 대문, 마찬

가지로 굳게 잠겨 있겠지? 꽃 따라 왔다가 인간의 삶을,

삶의 형식과 방법을 생각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