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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알
이*훈
오랜만에 잡은 엄마의 손은 매마른 논처럼 거칠고 갈라져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아본게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어렸을적 일을 마친 엄마의 손을 잡고 집을 향하던 때의 부드러운 엄마의 손은 이제 없었다. 아마 내가 엄마보다 키가 더 커진 후부터였을 것이다. 올려다봐야하는 엄마를 내려다보는 순간부터 나는 엄마의 손을 잡지 않았던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손에 비해 하얗고 부드러운 내 손이 부끄러웠다. 나를 키워준 그 손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저 투박하기만 했다. 학창시절 늘 책상에서 엎드려 자던 나는 엄마가 뜨거운 햇빛아래에서 고된 농사를 짓는것을 알면서도 늘 용돈을 원하고 공부를 열심히하겠다는 거짓말을 했을 뿐이었다. 나만 그런것이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고 추억일 것이다. 그런 나는 대학생이되었다. 독립이라는 꿈에 부풀어 자취를 하며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자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공부를 멀리하게 하였다. 늘 피곤했고 부모님과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그래서일까? 세상 모든 힘든 일이 나에게만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것 같았다. 나 혼자서 컸다는 치기어린 생각과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있던 나에게 어둠이 찾아왔고, 그제서야 나는 엄마를 찾아갔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연락 한통 없던 아들이 갑작스럽게 찾아와 기뻐하시던 부모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시겠다며 분주히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으러 온 아들을 반겨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짜증과 슬픔이 가슴속을 채웠다. 나는 그렇게 기뻐하시는 부모님에게 말해야 했다. 왼쪽 눈은 이미 실명했고 오른쪽 눈마저 점점 빛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해야했다. 점점 사라지는 빛속에서 행복해하시던 부모님의 모습과 식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모습에 행복해하는 부모님에게 나의 눈이 점점 안보이게 될거라는 말을 했다. 그 후에 내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건 하늘이 무너져버린것 같은 부모님의 얼굴뿐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양쪽 눈에 완전한 실명이라는 결과에 차라리 속이 후련했다. 더이상 희망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하지만 후련했던 것은 나뿐이었다. 결국 엄마는 내 앞에서 흐느끼셨다. 애써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셨다. 그런 엄마와 손을 잡고 말 없이 집으로 걸어갔다. 어렸을 때 잡았던 부드러운 손이 아닌 딱딱하고 갈라진 엄마의 손이 느껴졌다. 내가 준 상처만큼 엄마의 손이 갈라진 것인가보다. 가슴에만 못질을 한줄 알았는데 내가 알 수 있게 엄마의 손이 갈라져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못질을 한만큼 손이 매마르고 갈라져 있었다. 도대체 얼마만에 엄마의 손을 잡아보는 것인지... 무심하고 바보같은 아들이 상처를 준만큼 갈라져버린 엄마의 손이었다. 그런 아들을 느꼈을까? 엄마는 내게 오랜만에 아들 손을 잡아보니 정말 많이 컸네라는 말을 하며 그 따뜻한 손으로 나를 꽉 잡아주셨다. 바보같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눈을 잃고서야 내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자라왔다는 것을 늘 부모님이 뒤에 계셨기에 앞으로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적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엄마에게는 내가 어떤 아들이었을까? 평생 쌀과 자식을 키우신 부모님께는 나 또한 쌀알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 얇디 얇고 약한 벼에 무거운 쌀알들이 맺혀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된다. 고개를 숙이면서도 쌀알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 태풍과 비바람에 버티며 연약한 몸으로 쌀알이 차가운 가을 바람이 불어올 때쯤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다 커서 무거워진 쌀알을 놓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면서 버텨주는 것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때까지... 나는 부모님께 얼마나 무거운 쌀알인걸까?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내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 수 있었다. 갈라져버린 엄마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다 커버린줄 알았던 나는 아직도 부모님에게 매달려있는 아주 커다란 쌀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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